일제강점기 조선의 농촌 풍경을 담은 기록을 보면, 풍성한 들판과 달리 굶주리는 농민들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역설적이게도 조선의 쌀 생산량은 늘어났지만 조선인의 밥그릇은 더욱 가벼워졌습니다. 오늘은 그 이면에 자리한 산미증식계획의 실체를 짚어보려 합니다. 1920년부터 1934년까지 이어진 이 정책이 왜 조선 농업의 파탄을 가져왔는지, 당시의 구조와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의 쌀 부족, 조선을 겨냥하다
산미증식계획은 1918년 일본에서 발생한 쌀 폭동을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공업화로 도시 인구가 급증하면서 일본 내 쌀 수요가 치솟았고, 가격 급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졌습니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을 식량 공급지로 삼기로 결정했습니다. 1920년, 15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산미증식계획은 품종 개량, 수리 시설 확충, 간척 사업 등을 통해 조선의 쌀 생산량을 강제로 늘리는 데 목표를 두었습니다.
증산의 이면 — 반출과 수탈의 구조
생산량은 늘었지만 그 결실은 조선인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생산된 쌀보다 더 많은 양이 일본으로 반출되었고, 조선 내 1인당 쌀 소비량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수리 조합과 대규모 토지 회사는 이익을 독점했고, 소작농들은 높은 수리 조합비와 소작료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많은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 농업은 쌀 단작 구조로 고착되었고, 토지는 황폐해졌습니다.

역사의 기록을 통해 배우는 자세
이 시기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자료와 기록을 차분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역사서나 농업 정책 관련 학술 자료를 읽어 보시면, 정책의 배경과 영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관련 서적은 온라인 서점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역사 다큐멘터리나 전시 자료를 통해 시각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과거를 제대로 아는 것이 오늘을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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